개인주의적 사회관에 대한 비판 — 정리해보았다

모 비공개 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전통적 자유주의 관점에서 전제되는 개인주의적 사회관이 어떻게 비판되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 주제는 이미 수많은 학자들이 자세히 다루었는데, 그중 특히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영 (Iris Marion Young)의 저서「차이의 정치와 정의」에 드러난 그녀의 견해를 주로 참고하였다.

개인주의적 사회관과 자유주의, 그리고 사회존재론에 관해서는 아직 알아가는 중이라 잘못 이해하였을 수 있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학술논문 쓰는 것도 아니고 관련된 내용을 모두 익히고 글을 쓴다면 수십 년 후에야 가능할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먼저 쓰고 나서 고쳐나가도록 하겠다.

개인주의적 사회관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곧 스스로 결정하고 표현하며 행위하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 자유주의1 세계관에서 개인은 사회 이전에 존재하며, 각 개인은 다른 개인들과 독립되고 분리되어 존재한다2. 독립적이고 동등한 개인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의견을 표명하며 행위할 자유를 가지고 사회 규범을 선택하여 살아갈 자유를 지닌다. 이러한 자유주의의 핵심 가치는 사람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한다. 상대방을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기 때문에 상대가 지니는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하고 그가 행하는 바를 존중하는 것이다 (Nussbaum, 2015, p.113). 이는 곧 상대에게 위해를 주지 않는 한, 개인이 지니는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자유주의의 핵심 주장으로 이어진다.
  • 한편 정신 능력에 근거하는 인격 개념에 따르면3 인간은 “자유롭게 스스로 결정하며, 스스로를 발현하는 소질을” 가지므로 존엄하다. (이석배, 2019). 다시 말해 자기 결정 능력과 자기 표현 능력이 보장될 때 인간의 존엄이 보장된다.
  • 앞에서 제시한 두 입장을 정리해보자.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결정⋅표현하고 행동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자기 표현과 자기 결정의 소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상대방을 인간으로서 존중한다면 그가 지닌 소질을 발현할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은 인간을 인간으로서 간주하고 존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것이다.

개인주의적 사회관에 대한 비판

그러나 자기 인식과 자아 정체성 자체가 사회적⋅관계적으로 확립된다고 보는 관점에서, 개인은 타인과 분리되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벤담, 밀, 스펜서같은 전통적 자유주의자가 상정하는 개인주의적 사회존재론에 대한 비판이 증가했었고 20세기 후반에는 자유주의적 정치 전통에 대한 공동체주의자 (communitarian)들의 비판이 활력을 얻는다 (Courtland et al., 2022)4 . 이들은 개인 정체성, 자기 의식 (self-conciousness), 표현과 사고에 대한 언어가 본래 사회적이고 관계적이라는 점5 을 지적한다 (Kuchem, 2020). 개인은 사회적 상호작용 이전에 존재하지 않고 사회 외부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개인과 사회 집단6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관계하며 구성되는 것이다. 개인은 “언제나 이미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해왔음”을 체험하고, 이것이 개인의 자아를 형성한다 (Young, 2017, p. 117).
  • 예를 들어 나는 이미 7 학생, 남성, 한국인이라는 사회 집단에 속한 것으로 타인에게 인식된다. 나는 ‘학생이므로 공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거나 ‘남성이므로 듬직한 풍채를 가질 것이라는 혹은 가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기대, ‘한국인이니까 강의 중에 질문을 잘 던지지 않을 것’이라는 모종의 고정관념, 규범 및 속성에 비추어 인식된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는 내가 나를 이해하는 방식과 떼어낼 수가 없고, 나의 정체성은 타인이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보는지와 관련하여 규정된다. 예컨대 나는 스스로가 자연 계열 학부생의 일원임을 자각하는데, 바로 그 ‘자연 계열 학부생’이라는 사회 집단에 대한 속성이나 규범은 사회적으로, 즉 타인에 의해 이미 구성된다. 나의 일부를 구성하는 자연 계열 학부생으로서의 정체성은 타인이 자연 계열 학부생에게 가지는 규범과 기대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 물론 자아와 정체성이 타인의 인식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종다양한 사회 집단의 일원이며, 그렇기에 우리의 정체성은 여러 가지 소속감과 자기 인식의 집합으로 형성된다. 영이 설명하듯 우리는 어떠한 사회 집단의 일원이었다가 아닐 수도 있으며 나아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일원으로서 그 집단의 속성과 규범을 재규정할 수도 있다 (Young, 2017, p.117).
  • 이러한 자기 인식과 정체성은 곧 우리의 사고, 표현, 행동을 결정한다. 가령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다수자인 한국인일 때 가지는 사고⋅표현⋅행동 등은 러시아 사회에서 소수자인 한국인일 때 가지는 그것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또 다른 예시로, 자신이 자본가 사회 집단의 일원으로서 정체화할 때와 노동자 사회 집단의 일원으로서 정체화할 때 서로 다른 정치적 사고와 행위를 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 결론적으로 정체성, 자기 의식, 사고와 표현 및 행동이 본래 타인과 관계하며 확립되는 이상,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사회 이전의 개인’과 타인-독립적인 ‘원자화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온전히 독립적인 개인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느 정도의 자유 의지를 가지고 생각과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사회와 함께 형성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타인과 관계하며 존재한다는 자기 인식은 사회 속의 나를 바라보는 핵심적인 사고이자 틀이라고 할 수 있겠다.

Reference

  • Courtland, S. D., Gaus, G., & Schmidtz, D. (2022). Liberalism. In E. N. Zalta (Ed.),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pring 2022 ed.): Metaphysics Research Lab, Stanford University. URL: https://plato.stanford.edu/entries/liberalism/
  • Epstein, B. (2024). Social Ontology. In E. N. Zalta & U. Nodelman (Eds.),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pring 2024 ed.): Metaphysics Research Lab, Stanford University. URL: https://plato.stanford.edu/entries/social-ontology/
  • Kuchem, M. D. (2020). Young, Gilbert, and Social Groups. Social Theory and Practice, 46(4), 737-763. Retrieved from http://www.jstor.org/stable/45302464
  • Machan, T. (2000). Liberalism and Atomistic Individualism. Journal of Value Inquiry, 34(2-3), 227-247. Retrieved from https://www.proquest.com/scholarly-journals/liberalism-atomistic-individualism/docview/203901387/se-2
  • Nussbaum, M. C. (2015). 혐오와 수치심. [Hiding from Humanity: Disgust, Shame, and the Law]. (조계원, Trans.): 민음사.
  • Young, I. M. (2017). 차이의 정치와 정의. [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 (김도균 & 조국, Trans.): 모티브북.
  • 이석배, & 김필수. (2012). 의료영역에서 인간의 존엄, 생명, 생명권의 관계. [Verhaltnisse zwischen Menschenwurde, Lebenschutz und Lebensrecht in der Medizin]. 한국의료법학회지, 20(2), 247-265. URL: https://kiss.kstudy.com/ExternalLink/Ar?key=3720655
  • 최바름. (2023).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에서 최중증발달장애인의 노동자되기: 권리, 인간됨, 노동. (석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URL: https://www.riss.kr/link?id=T16810468
  1. 자유주의는 단일한 사상이 아니고, 구체적인 주장과 근거들이 이론가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자유주의는 순수한 선택자로서의 추상적인 ‘개인’ 관념을 전제하지만, 시대에 따라서 학자에 따라서 그 견해가 다양하다. 자유주의에 관한 Courtland, et al.의 글이 공부에 도움되리라 생각한다. 사실 나도 아직 3.4절만 읽어봄 (Courtland et al., 2022). 

  2. 이러한 관점을 원자적 개인주의라고 한다. 원자적 개인주의 (atomistic individualism)란 서로 분리된 원자로 이해되는 개인으로부터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입장이다 (Epstein, 2024). 원자적 개인주의에 대한 다양한 입장에 관해서는 Machan의 글을 보라 (Machan, 2020). 

  3. 물론 정신 능력에 근거하는 인격 개념은 한계가 뚜렷하다. 한 사람이 인격 내지 인간됨을 가지는지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갓 태어난 신생아, 의식이 소실된 뇌사 상태의 환자, 판단 능력이 결여된 인지증 (치매) 환자 등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이들이 모두 인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신 능력에 근거하는 인격 개념을 택한다면 이들이 인격을 지니는지가 불분명해진다. 인격 개념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에 대해서는 최바름의 학위 논문 1.2.2절을 보라 (최바름, 2023). 

  4. 이후 자유주의 이론은 우리가 어떻게 문화와 사회 집단의 일부이면서도 우리 삶을 스스로 설계하는 자율적인 선택자이기도 한지에 관한 문제에 초점을 두게 된다 (Courtland et al., 2022). 

  5. 후설 (Husserl, E.), 헤겔 (Hegel, G.W.F.), 셸러 (Scheler), 미드 (Mead, G.H.), 버거와 루크만 (Berger, P.L. & Luckmann, T.), 매킨타이어 (MacIntyre, A.), 굴드 (Gould, C), 테일러 (Taylor, C.), 데이비스 (Davis, J.B.), 영 (Young, I.), 길버트 (Gilbert, M.) 등 여러 이론가들은 개인들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각자의 관점을 제시하였다; 버틀러 (Bulter, J.)와 해스랭어 (Haslanger, S.) 등은 실천 (practice)에 초점을 두어, 개인이 세계 속의 객체와 상호작용한다는 점이나 개인의 실천과 수행이 사회⋅문화에 의존적이라는 점을 짚어내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개인’에 대한 이론들에 관해서는 Epstein의 저서 3.4절 ‘Socially Constituted Building Blocks’을 보라 (Epstein, 2024). 

  6. 성별, 나이, 국적, 섹슈얼리티, 계급 등이 대표적인 사회 집단이다. 

  7. 상대가 나를 인식한 이후에 나에게 여러 속성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속성을 가진 나’로서 나를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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