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안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돈 안 버는 편이 좋겠습니다.”

1월과 2월에 읽은 것들 정리해 보았다! 원래는 반기마다 정리하려 했는데 그때 가면 귀찮을 것 같아서 미리하기로 했다. 귀찮으면 성실해진다… 아무튼 그렇다!!!!

1월과 2월에 읽은 것들 정리해 보았다! 원래는 반기마다 정리하려 했는데 그때 가면 귀찮을 것 같아서 미리하기로 했다. 귀찮으면 성실해진다… 아무튼 그렇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 한 권 말고는 대부분 전자책으로 읽었다. 실물 도서를 사 읽을 여건이 안 되는 상황이라 아쉽다. 상당히 좋아서 추천하고픈 작품은 제목을 형광펜으로 칠해두었다 :)

최근에 읽은 것부터 역순으로 살펴보았다. 인용문의 강조 표시는 내가 한 것.

읽은 것들

  • 고선경,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고선경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이전의 『샤워젤과 소다수』와는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다. 소유정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샤워젤과 소다수』의 대표 이미지가 무한한 기포를 가진 소다수와 같이 청량하고 시원한 것이었다면,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에서는 “씁쓸한 시나몬 향”(「카푸치노 감정」)이 가미된 커피나 오래 끓인 “어두운 술”(「뱅 쇼 러브」)처럼 높은 온도와 입안에 남는 맛을 가진 종류의 이미지가 돋보인다. 끈적이지 않고 휘발되는 산뜻함이 아니라 오래 남는 맛과 향은 시적 주체에게 남은 어떤 것을 환기시킨다.

    내가 글 잘 쓰는 사람들에게서 훔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자신이 느낀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다. 독자로서 글을 읽으며 경험한 감정과 이미지를 다른 이들도 느끼도록 표현하는 것을 보면 감탄스러울 뿐이다. 훔치고 싶다고 표현한 것은 그런 능력을 날로 먹고 싶어서…ㅎㅎ 당연히 날로 먹으면 안 되겠죵 ㅠ

    “높은 온도와 입안에 남는 맛을 가진 종류의 이미지”, 정말 그렇다. 죽음에 관한 소재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렇다고 분위기가 무겁지는 않다. 오히려 따뜻하다.

    특히 좋았던 시는 「맨발은 춥고 근데 좀 귀여워」, 「진짜 진짜 축하해」, 「폭설도 내리지 않고 새해」, 「그때 내가 아름답다고 말하지 못한 것」, 「죽어버려」, 「팬레터 — 12월 31일」.

    그중에서도 웃겼던 시는 「디올 전속 디자이너가 내 옷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은 고양이와 자객」, 「남영」, 「행복한 파괴자들」.

    웃기지 않다고 별로인 것은 절대 절대 아닌 거 아시죠? 정말 모든 작품이 다 좋았어…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고 싶은 시집이다. 추천 추천!!

  • 오혜민, 『당신은 제게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 한예종에서 페미니즘을 강의하는 오혜민 교수가 페미니즘에 관해 흔히 제기되는 질문들에 답한다. FAQ느낌이라 내용이 무겁지는 않다. 다만 책에서 다룬 질문들이 대학 강의실에서 저자가 직접 들은 것들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설명을 이해하고 생각을 조금씩 바꾸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질문하고 설명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주변화된 이들에게는 자신이 겪는 부정의를 입증하고 설명할 것이 요구된다. 부조리한 상황을 스스로 입증하고 설명하느라 되려 저항과 휴식에 사용할 기력이 소모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리아 샤비시가 이야기하듯 “설명 자체가 저항의 일환”일 수 있다 (Shahvisi, 2024. p.14). 어떤 이는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을 향해 먼저 공부하고 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에 ‘열심히 공부하고 와야지~ 끄덕끄덕’하며 공부하고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설명을 뿌리면 듣는 사람 중 몇 명이 이를 귀에 담을까 말까 한 것이다. 설명을 주기적으로 뿌리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나도 어떤 주제가 있으면 제발 생각이라는 것을 자주 해봐야겠다. 그냥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굴려야…머리를 굴려야…ㅠㅠ 생각은 그냥 떠오르는 것이지만, 생각을 정리하여 다듬는 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다음에 말하는 거다!!! 난 입 밖으로 말을 꺼내서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나보다 설명에 적합한 사람이 말할 때 끼어들지 말아야겠다… 이것도 잘 안되는 것 같아…

  • 이우혁, 『퇴마록 국내편 1, 2권』: 애니메이션으로 나왔다길래 읽어 봤다. 중학교 학교 도서실에 낡은 책 표지로 여러 권 꽂혀 있던 기억이 난다. 괜히 손이 가지 않아 읽어본 적이 없지만 ㅎ

    재미있는 판타지 미스터리 오컬트 소설!

  •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제목은 되게 자주 들어봤는데 미루고 있었당.. 친구 Jun.와 이야기하다가 언급된 책인데 궁금해서 읽어봤다! 무척 재미있게 읽음.
    •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이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상상하며 읽었다.
      기억에 남는 부분 - 스포일 수도? (더 보려면 클릭)
      지구에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충격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수없이 많겠지. 이제 나는 상상할 수 있어.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 「공생 가설」: 어케 이런 생각을 하지?! 진짜 넘 재밌다… 나 “외계 뭐시기가 알고 보니 문명 속에 어쩌구 저쩌구?!” 라는 소재 참 재밌게 읽는 것 같다. 정말 뜬금없는데 이성수 작가의 SF 소설 『스핑크스의 저주』가 떠올랐다. 이것도 비슷한 소재였는지 가물가물한데, 초등학교 때 넘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기술은 그것이 개발된 사회정치적인 맥락 속에 있다는 것… SF 소설에서 다루어질 때마다 참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주제이다. 사회정치적인 배경은 개별 인간의 삶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준다. 안나의 삶에서와 같이… 때로는 무지막지하게!!! ㅠㅠㅠ
  • 김지효, 『인생샷 뒤의 여자들』: 인생샷 문화가 어떤 역사와 맥락에서 피어났는지, 이것이 여성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특히 디지털 페미니즘 운동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본다. 연구자 김지효의 논문을 바탕으로 다시 쓰인 대중서라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일부 20대 여성에게 인생샷 및 셀카 전시는 사랑받고 인정받을 자격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기능하는데, 이는 이들 여성에게 부담을 가한다. 이때 인생샷과 셀카 보정에 매몰되는 정도의 차이는 개인이 놓인 준거집단에서 아름다움이라는 자원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달려있다. 특히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상대화할 수 있는 관계나 자원을 가지고” 있는지도 핵심적이라고 한다.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고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특정한 기준이 절대화되지 않고 다양한 선택지가 공존하고 경합할 때, 우리는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미적 욕망을 탐색할 수 있다. 반면 특정 기준이 너무 강력한 힘을 가질 때, 예를 들면 외모가 소속집단 안에서 서열을 정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거나 사랑받을 자격과 연관될 때, 아름다움의 중요성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된다. 그때부터 아름다움은 미학을 넘어 정치의 문제가 되고, 사람들은 좀 더 진지한 표정으로 거울 앞에 서게 된다.

    흥미로운 내용도 정말 많았다. 저자는 “인생샷과 디지털 페미니즘은 같은 시기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주체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실천된다”고 설명하였다. 애초에 둘 중 하나를 택하는 이분법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이 어떤 준거집단에 속하는지나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따라 인식이 행동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상황도 있다는 사실이 기억에 남는다.

    실제로 아름다움은 초월적인 억압으로 작동하기보다 각자의 나이·건강·인종·계급·섹슈얼리티 등 구체적인 몸의 현실과 엮여 드러나기에 모두에게 동일하게 경험되지 않는다. 남성적 시선과 무관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도 있고, 아름다움을 노동과 생계의 수단으로 삼는 여성도 있으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망 자체를 부정당하며 숨겨야하는 여성도 있다. 탈코르셋 운동의 이분법적 서사는 다양한 몸의 서사를 누락한다는 한계를 갖는다. (…) …아름다움이 그들의 생계 및 일상과 촘촘히 연관되어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는 신념만으로 살아가는 상상적 존재가 아니라 몸을 가진 물적 존재다. 또한 페미니즘은 저 멀리 붕 떠 있는 사상이 아니라 각자의 몸, 그리고 몸이 놓인 위치와 상호작용하며 형성된다. 모든 여성에게 당장 머리를 자르라거나 화장을 그만두라는 요구는 오히려 누군가의 삶의 기반을 더욱 취약하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내가 당사자도 아닌데 말을 얹을 거리는 딱히 없을 것 같고… 외모가 탁월한 사람에게 끌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외모만이 사랑받을 자격이 되지 않는 공동체 내지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고 어려워라

    책은 강력 강력 추천!!

  • 동사원형, 『만화로 보는 일리아스』: 요즘 “일리아스 개십타쿠 서울대 서양고전학연구소 소장님이자 서양고전문헌학 교수님께 명함 받은 썰“로 화제가 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전에 맛 좀 보려고 읽은 만화 버전 일리아스. 되게 재밌어서 읽은 후 Emily Wilson이 번역한 영문 번역판을 덥석 구매했다. 생각보다 두껍더라…

  • Somerset Maugham의 『Cakes and Ale』: 도서관에서 Somerset Maugham의 Cakes and Ales을 빌렸다. 도서관에는 Judea Pearl의 The Book of Why를 빌리려 갔는데, 생각보다 두꺼운 책이라 구매한 후 공부하며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얼른 Yes24 카트에 들어가서 읽을만한 책을 살펴보다가 서머싯 몸의 『케이크와 맥주』가 눈에 띄어서 읽어보기로 했다. 그래도 미국 왔는데 소설 원서로도 좀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에! 2월 14일에 빌렸는데, 빌리고 나서 ‘오늘 발렌타인데이니까 케이크와 맥주를 먹으면서 『Cakes and Ales』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케이크와 맥주를 그대로 먹기에는 이미 다른 술이 방에 있었던 차, 케이크 대신 쿠키를 먹기로 했다. Insomnia에서 이전에 봐둔 발렌타인 한정 기간 쿠키 ‘Red Velvet’와 ‘Red Velvet Cheesecake Filled Class’를 사 왔다. Conviction 위스키와 쿠키를 먹으면서 읽었는데 진도는 얼마 나가지 못했었다…

    대략 Alroy Kear가 주인공 Ashenden에게 Driffield씨 전기 쓰는 것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면서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소설이다. 주인공이 Driffield 씨, 특히 Driffield 씨의 첫 부인 Rosie Driffield와 겪은 일화들을 들려준다. 처음에는 지루했는데 Driffield 부부 야반도주하는 장면부터 슬슬 재밌어졌다. 주인공이 Rosie와 바람 피우면서 이야기의 중반에 접어드는데 이때부터 자극적인 이야기 잔뜩 나와서 금방 읽게 된다 ㅋㅋㅋㅋ

  • 미셸 우엘벡, 『지도와 영토』: 제목이 궁금하여 검색해 보았더니 2010년 공쿠르상 수상작이라고 나왔다. 게다가 ‘우리 시대 최고의 논쟁적인 작가’가 쓴 책이라는 홍보문구에 홀려 읽어보았다. 예술가 ‘제드’의 일생을 그린 이야기인데, 제드 성격대로 글이 튀는 곳 없이 쭈욱 흘러간다. 전개 자체는 그렇게 흥미진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제드의 생각과 행동을 따라가며 몰입하여 읽게 되더라.

    표현들이 되게 씁쓸하면서도 과격하여 웃긴 것이 블랙 코미디적인 구석이 있다고 느꼈는데, 장소미 번역가는 작품 해설에서 이를 적확하게 표현했다.

    우엘벡은 우리를 나락에 처넣는 순간에도 곧이어 히죽거리게 만든다. (…) 히죽거리는 체념으로 차분해지는 절망감이라고 할까.

    실제로 읽는 내내 히죽거리게 되더라… 한편 작가 본인의 캐릭터를 작품 안에 등장시켜 이리저리 다룬 것도 재밌었다.

    장소미 번역가에 따르면, 『지도와 영토』가 우엘벡의 이전 작품에 비해 “(…) 잔인한 폭력과 노골적이고 역겨운 성 묘사가 걸러졌”다고 한다. 『지도와 영토』에도 거슬리는 부분이 조금 있었는데 다른 작품들은 얼마나 정도가 심하길래…

  • 듀나, 김보영, 배명훈, 장강명의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 태양계 행성을 배경으로 하는 SF 단편소설집이다. 강력 강력 추천! 지금 읽으세요!
    • 장강명, 「당신은 뜨거운 별에」: 인간이 취할 수 없는 신체 동작을 로봇에게 시켜 로봇의 제어권을 탈취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한편, 프로듀서란 작자들이 파산 선언하고 다른 회사로 튀어 더 해 먹겠다는 생각하는 것을 보고 정말 자본의 논리 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며 고개를 저으며 읽었던 기억이…
    • 배명훈, 「외합절 휴가」: 실사화되면 정말 좋을 것 같은 작품이다. 불쌍한 주인공…
      <속보> 화성북반구연맹 소속 17개 도시 독립선언 가담. 22개 시 의회 해산 및 재선거 절차 검토.

      요 속보만 봐도 읽고 싶어지지 않나요…?

      공간결정론 Space decides
      공간이 삶을 결정한다. 우주가 지배형태를 결정한다. 두 지점 사이의 거리와, 통신수단 혹은 이동수단의 속도 사이의 관계가 두 행성 사이의 지배구조를 한정짓는다.

      화성에 대한 지구의 지배방식은 결국 단 한 가지 형태, 봉건제로 귀결된다. 지구의 이익을 완전히 대변하는 제후가 화성 현지에서 직접 지배하는 것 외에 다른 유효한 지배방식은 생각할 수 없다. 잠깐은 성공할지라도 결국은 실패할 것이다.

      과학 기술이 소설 속 현실정치나 정치과학과 엮이는 이야기도 정말 좋고 재밌다.

    • 김보영, 「얼마나 닮았는가」: 정말 강렬한 소설이다. 무언가를 인지하지 못하는 인공지능 ‘훈’의 혼잣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게 내가 계속 사로잡혀 있던 생각이었다.

      문제는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내가 알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모르는 것을 안다’는 말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나는 지난 1년간의 항해 내내 선내에 있는 무엇인가를 보지 못했다.

      사람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공기처럼 흔한 무엇인가를, 누구나 가장 먼저 확인하고 고려하는 무엇인가를. 뻔히 보면서도 지식이 없어 인식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게 항해 내내 오류를 일으켰다.

      나는 그게 뭔지 알아내야만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었는지 알고 나면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게 된다. 다시 읽다보면 이전에는 그냥 넘어갔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훈과 마찬가지로 독자인 나도 이야기의 “공기처럼 흔한 무엇인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머리에 힘주고 살아가야만 하는데, 그래도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을 것이란 점에서 좀 무력하기도 하다.

      아니 근데 지금 봤는데 알라딘 밑줄 긋기에 스포 뜨는 거 뭐야;; 이 책 알라딘 페이지 들여다보지 말고 읽으셔요..

      「얼마나 닮았는가」를 표제작으로 하는 김보영 작가 소설집이 있다는 걸 며칠 전에 알게 되어 요즘 읽는 중이다.

    • 듀나, 「두번째 유모」: 이야기도 괜찮았고 후기가 기억에 남는다

      여전히 나는 SF 하면 우주선을 탄 청소년들을 떠올린다. 난 심지어 이 계획에 이름도 붙여놨다. ‘이오의 화산 프로젝트’. 우주복을 입은 틴에이저 주인공들이 이오의 화산 사이를 탐험하는 이야기를 쓰기 전엔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 이 계획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단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이 변했다. 우린 더 이상 우주탐험의 선두에 인간들이 설 거라고 믿지 않는다. 우리의 틴에이저 주인공들에겐 더욱 기회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20세기 중엽 미국 남성 작가들이 공유했던 그 낙천주의를 갖고 있지 못하다. 과연 내가 그들만큼 인간이라는 종을 사랑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 허주은, 『붉은 궁』: 요 책에 관해서는 신기한 일화가 있다. Jae.랑 Sad.와 이야기 하던 도중 Jae.가 June Hur 작가의 『Crane Among Wolves』라는 책을 추천해 주었다. 당시에는 오호~하고 넘어갔는데, 알고 보니 불과 몇 시간 전, 내가 허주은 작가의 『붉은 궁』을 읽으려고 폰에 저장해두었던 것이다!! 글쎄 Jae.에게 책 추천받기 불과 3시간 전에! 어떻게 이런 우연이…?! 당시에는 두 책의 저자가 같은 줄 몰랐는데 책의 소재와 표지 일러스트가 비슷하여 눈치챘다.

    서얼 출신의 의녀 ‘백현’이 포도청 종사관 ‘서어진’과 혜민서 의녀 살인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야기. 의녀 백현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고 서얼 출신으로 이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인 의녀가 되고자 엄청난 노력을 한 사람이다.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위험한 길이 옳은 길이라는 이유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이 멋졌다. 사건을 해결하려는 큰 줄기를 따라가는 동안 로맨스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되게 재밌고 기분 좋게 읽었다.

    (…) 급기야 다시는 아버지의 따뜻한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변했다. 두려움은 때때로 분노가 되었다.

    나는 들고 있던 종이를 구겨 쥐었다. 정수 의녀의 목숨이 위태로운데 아버지의 인정이나 걱정하다니. 뻔하고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느라 옳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겁쟁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무엇이 옳은 일인지 알았다. 하늘의 태양처럼 선명하게 알아보았다.

  • 이소호, 『나의 미치광이 이웃』: 환경이 심각하게 오염되어 식량 수급이 최우선의 가치로 내세워진 근미래. 미술과 음악과 같은 문화가 현실 논리에 밀려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되고, ‘문화 폭동’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 영화관, 박물관, 미술관이 남아 있지 않다. ‘문화 폭동’이 일어나기 몇 년 전, 미술을 공부하러 독일로 유학 온 한국인 ‘유리’가 미술 천재로 평가받는 기후 난민 ‘미아’를 룸메이트로 들이게 되며 일어나는 이야기. 『라비우와 링과』를 읽으면서도 느꼈는데, 난 타지에서 공부하며 그곳 학생과 지내는 이야기를 좀 좋아하는 것 같다. 그 소재 자체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지금 내가 교환학생으로 공부 중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 미셸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 20대 중반 즈음까지 ‘미셸’이 어머니와 함께 겪은 좋고 나쁜 일상의 이야기가 기억된다. 기억은 어머니의 암 투병 생활 동안,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미셸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미셸이 어머니와 겪은 이야기 하나하나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읽었는데, 그러다 보니 후반부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그녀의 서술이 마치 내 경험을 돌아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 몰입하였던 것 같다. 특히 미셸이 이모와 사촌에게 된장찌개를 대접하고자 망치 여사의 레시피를 보고 따라 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된장찌개를 조리하면서 엄마가 해 주었던 음식의 맛을 찾아가는데, 미셸이 엄마를 기억하는 방식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셸이 어머니의 죽음을 맞는 나이가 내 나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더욱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의 재를 땅에 묻는 일은 나에게 중요했다. 꽃을 가져와 놓아둘 공간이 필요했다. 쓰러질 수 있는 땅이, 주저앉을 바닥이. 아무 철이고 와서 눈물을 흘릴 풀밭과 토양이 필요했다. 마치 은행이나 도서관에 찾아간 것처럼 진열장 앞에 똑바로 서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니라.

    엄마가 사라지고 나니 이런 것들을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기록되지 않은 일은 엄마와 함께 죽어버렸으니까. 한낱 기록과 내 기억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제 엄마가 남긴 표식을 단서로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오롯이 내 숙제가 되었다. 이 얼마나 돌고 도는 인생인지, 또 얼마나 달콤쌉싸름한 일인지. 자식이 엄마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이, 한 주체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기록 보관인을 기록하는 일이.

  • 문이소, 손지상, 정보라, 이산화, 이주형, 이하진, 전혜진, 최의택, 홍준영, 홍지운, 『태초에 외계인이 지구를 평평하게 창조하였으니』: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홍지운 작가의 「유사과학소설작가연맹 탈회의 변」이 특히 유쾌했다.

  • 정지섭, 『맘카페라는 세계』: 맘카페… 존재만 알고 무엇하는 커뮤니티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었다. 딱히 관심이 없었는데 또 나와 관련 없는 세계 이야기가 참 흥미롭죠… 맘카페의 목적은 무엇이고 사람들은 왜 모이는 것인지, 운영은 어떻게 되는지, 나아가 사회 속에서 ‘엄마’라는 사람이 어떤 인식을 하고 어떻게 인식되는지,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무려 맘카페 운영자께서 직접 설명해 주시는 거라 더욱 궁금해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싶다.

  • 홍락훈, 『잼 한 병을 받았습니다』: 홍락훈 작가의 SF 초단편집. 역시 재밌고 매력적인 소재들로 가득하다.

  • 정보라, 『한밤의 시간표』: 정보라 작가의 괴담(?) 연작소설집. 하지만 무섭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분위기가 서늘한 것이 참 읽을만했다.

  • 김멜라, 공현진, 김기태, 김남숙, 김지연, 성해나, 전지영,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이야기들 다 흥미롭게 읽었다. 추천!

    • 김멜라, 「이응 이응」: ‘이응’으로 기억과 추억을 보살피는 것… 인상 깊었다. 나도 ‘이응’으로 다종다양한 쾌락 느껴보고 싶다…….. ‘이응’이 뭐냐면…읽어보세용
    • 김기태, 「보편 교양」: 이야기도 괜찮았지만 작가 노트가 기억에 남는다.

      두 사람 사이에 두루 미치고 통하는 무엇을 상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시간차는 있을지언정 우리에게 공평히 깃드는 무엇이 전혀 없다면, 어떻게 사랑과 우정과 문학이 가능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내게 소설을 나누는 일은 나의 개별성과 우리의 보편성을 동시에 탐색하는, 가장 덜 기만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맞춤형 개성을 구매하라고 재촉하는 이세계에 잠식되고 싶지 않다.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된 저 세계로 투신하기에는 이르다. 둘 사이에서 나는 일단 문학에 머물러보기로 했다. 당신도 그곳에 계심을 믿는다.

    • 성해나, 「혼모노」: 이야기가 되게 강렬하다. 묘사나 마무리도 그렇고 되게 통렬하다고 해야 하나…? 수미상관적인 구조와 표현이 좀 소름돋는다. ‘진짜’는 무엇이고 ‘가짜’는 무엇인지, 둘의 구별이 의미있는 것인지?! 읽어보세요!!

  • 김서해, 『라비우와 링과』: 라비우와 링과가 뭘까 궁금해서, 그리고 표지에 쓰인 ‘내 외로움의 책임을’이라는 문구가 궁금하여 펼쳐보았다 (전자책으로 읽은 거라 사실 펼친 건 아니고^^). 대학생 ‘주영’이 한국으로 온 교환학생 ‘이네스’를 룸메이트로 들이며 겪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들이 대체로 일상적인데 그 속에서 주영이 느끼는 미묘한 감정이 이해될 것도 같다. 언어를 소재로 하는 주영과 이네스의 대화를 잔잔히 읽게 되더라. 한편, 이네스의 말에 공감이 됐다:

    “외국인은 거의 다 친절해.”

    “외국인이 어떻게 거의 다 친절해? 다 똑같은 사람인데. 말도 안 돼.”

    “정말이야. 예를 들어볼게. 다른 나라에 여행 간 사람들은 기분 좋게 있다 가고 싶으니까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최대한 화를 안 내려고 해. 그리고 다른 나라에 살기 위해 간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밖에 없으니까 먼저 착하게 행동해야 해. 잘 보여야 하니까. 사람들이 친절하게 해줬으면 좋겠으니까. 내가 갑자기 울면 너도 나한테 아파? 괜찮아? 나한테 무슨 일인지 얘기해도 돼! 이렇게 말해주길 바라는 거지.”

    읽고 나면 ‘라비우’와 ‘링과’를 따라서 중얼거리게 된다. 추천!!

  •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의 단편 「필경사 바틀비」, 「꼬끼오! 혹은 고결한 베네벤타노의 노래」,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이 실린 단편집. 시스템을 거부하는 바틀비의 “안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는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취업 안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돈 안 버는 편이 좋겠습니다. 놀고먹고 싶습니다. 인용 부호가 없죠? 다 내가 하는 말이다 ^0^

  • 요네자와 호노부, 『I의 비극』: MBTI I인 사람이 처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다 ^^ 텅텅 비어버린 시골 마을로 타지 사람들 이주시켜 정착시키는 사업을 이끄는 ‘소생과’ 소속 공무원 만간지와 신입 공무원 간잔이 열심히 일하는 (?) 이야기다. 사업 자체가 딱 봐도 골치 아파 보이지 않나요. 외딴곳으로 모이는 생면부지의 사람끼리는 트러블이 생기기 마련이죠. 사업 진행을 말아먹을 위기가 수도 없이 찾아와서 골머리 앓는 만간지 씨. 사건들이 해결되긴 하지만…,,,,, ! 일상 미스테리 소설인만큼 끝까지 읽어보세요!

Reference

  • Shahvisi, A. (2024).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이세진, Trans.).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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