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시간이 좀 있는 해라 이것저것 읽어보았다!
2024년에는 이런저런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비문학 위주로 읽은 것 같다. 보통 비문학 도서들은 공부하거나 정리하면서 읽다 보니 시간이 은근히 많이 든다. 그만큼 머리에 더 오래 남긴 하지만! 읽은 책들에 관한 이야기를 상반기, 하반기로 나누어 해보겠다. 이 포스트는 하반기!
위에 있는 책일수록 더 최근에 읽은 책. 최근 것부터 내려가면서 살펴보자. 문학은 이미지나 감정 위주로 읽는 편이라서 말할 것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아래로 갈수록 기억이 흐려져서 말할 것이 적을 수도… 비문학의 경우 노트로 정리하여 놓은 내용이 있다면 다시 간추려 적어보았다. 도서 제목은 Yes24 도서 페이지와 연결해 두었는데, 이건 그냥 내가 Yes24를 이용해서 그렇게 해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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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채식주의자』는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 이후에 읽게 되었다. 와아아아앙 노벨문학상 수상 축하드려요!!!! 작가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학창 시절에 한강 작가 책을 학교 도서실에서 본 기억이 없다… 내가 못 본 거겠지…? 게다가 대학 온 이후로 책 자체를 잘 읽지 않다 보니 계속 미루게 되더라 ㅎㅎ… 얼핏 읽기에는 정상성 추구하는 사회에서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미친 사람이 되는지에 관한 이야기인 것으로 느꼈는데, 한편으로 소위 ‘미친’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려 할 때 이를 막는 게 적절할지도 궁금했다. 타인이 보기에 자기 파괴인 행동이 당사자에게는 자기 발현의 행동이라면 이를 고치거나 바꾸려고 하는 게 옳은 일일까?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미친’ 행동은 자제해야 할 것 같으면서도, ‘미친’ 행동을 간섭받지 않으면서 살아갈 방법은 정말 없는지 생각하게 된다. 어떤 행동을 ‘미친’ 것으로 규정하는 기준이 완화된 세상은 살기에 편할 것 같다. 물론 그 기준을 바꾸는 것이 옳거나 유용한지 판단하는 것 자체가 어렵거니와 설령 성공적으로 판단하더라도 사회 전체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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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락훈,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 드래곤 역시』: 꿀잼 SF 초단편집. 저자가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짧은 글을 모아낸 책인 듯한데, 초단편인데도 아주 흥미롭다. 가장 흥미로웠던 소재는 ‘인식 재해’에 관한 이야기였다. 재해라 하면 보통 물리적인 속성을 가질 것만 같지만, 인식 재해는 이해와 앎의 영역에 있는 인식론적 재해 개념이다. 개념 자체가 넘 흥미롭지 않은지?? 시리즈 〈에이전트 오브 쉴드〉에서 콜슨 요원이 겪는 일도 인식재해에 가깝겠다는 생각이 든다. 편하게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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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금성이 행성 Venus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 신라의 금성을 말하던 것! 재밌는 미스터리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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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 『사상적 지진』: 고진의 강연집인데 어려웠다. 문학비평 부분은 그냥 날렸다. 몇몇 글은 인상깊은 지점도 있었다. 근데 어디 적어뒀던 것 같은데 기억 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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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아무튼, 실험실』: ‘아무튼’ 시리즈 익히 들었는데 요 책으로 처음 읽어봤다. 나도 생명과학 분야 실험실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어서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고 뜨악하는 부분도 (ㅋㅋ) 있었다. 가볍게 읽어볼 만하다. 읽고 나니까 내 미래가 좀 걱정됨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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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이전에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은 적이 있다. 같은 세계관에서 벌어지는 일들인데 넘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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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고등학교 다닐 때 화제가 되었던 책인데 솔직히 책이 내 취향은 아니었다. 소재는 흥미로웠지만 그렇게 재밌게 읽진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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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자와 호노부, 『덧없는 양들의 축연』과 『추상오단장』: 좋은 미스터리 소설들! 특히 『덧없는 양들의 축연』을 읽으며 느껴지는 기묘한 분위기가 좋았다.
- 정보라, 『고통에 관하여』: 매우 흥미롭게 읽은 미스터리 소설. 본문만큼이나 ‘작가의 말’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강조는 내가 한 것). 소설 읽어보세요.
(…) ‘-하지 않으면’ 뒤에 구체적인 설명조차 덧붙일 수 없는, 언제나 쫓기는 삶의 두려움. 폐지 줍는 노인을 돌보는 사회안전망이 없고 한번 비정규직은 평생 비정규직이니, 백세 시대에 나는 죽지도 않는 질긴 목숨을 저주하며 빈곤 속에 버려질 것이라는 공포. 그래서 나는 열심히 살기 위해서 잠을 못 자기도 하고 밥을 못 먹기도 하면서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하여간 정말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나의 영생과 종말 이후 나의 내세를 결정하는 권력을 가진, ‘교주’든 교수든, 하여간 그런 사람들한테 잘 보여야 한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잘 보이는 것은 열심히 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버리라는 얘기였다. 독립된 주체로서 나의 생각과 경험과 사상과 감정을 모두 밟아 꺾고 권력자의 생각과 경험과 사상과 감정에 무조건 동의하라는 뜻이었다.
싫다.
의미 없는 고통은 거부해야 한다. 힘들고 괴로운 일이 모두 다 가치 있는 일은 아니다. 충분히 잘 먹고 충분히 잘 쉬고 내 몸을 잘 돌보았을 떄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괴로운 상황을 탈출할 길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 탈출할 길이 있어야 한다. 삶의 선택지가 늘어나야 한다.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탈출해서 잘 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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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연, 『인권 개념의 철학적 정당성 옹호』: 이건 학위논문이다. 학위논문도 아무튼 책이라고!!ㅋㅋㅋㅋ 내가 관심 갖는 주제 중 하나가 인권 개념이 철학적으로 정당화되는지에 관한 것이다. 인권이 과연 인간의 고유한 본성이나 가치에 기초하는지, 그러한 보편 본성이 존재하기는 하는지. 권리는 무엇인지. 권리가 법적 개념이라면 도덕적 요청을 권리로 만드는 권위가 존재하는지. 인간이 ‘인격’이라는 가치를 지녀 존엄하므로 존중받을 권리를 지닌다면 인격은 무엇인지, 누구는 인격을 가지고 누구는 가지지 않는지. 비인간 동물의 권리는 어떻게 간주해야 하는지, 등 여러 궁금증이 있다. 인권철학을 주제로 더 공부하여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다시 돌아와, 이채연 (2020)은 인격에 대한 행위자성 이론을 바탕으로 인권이 철학적으로 정당화되는 방식을 살펴본다. 행위자성 이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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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의 & 최원배 & 여영서 & 박일호, 『입증』: 과학철학에서 입증confirmation이란 무엇인지 다루는 책이다. 어떤 증거가 가설을 입증한다고 말할 때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이를 설명하는 가설연역법의 입증이론, 헴펠의 입증이론, 베이즈주의의 입증이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참고로 헴펠의 입증이론에서의 ‘헴펠’은 바로 헴펠의 역설의 헴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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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자와 호노부 원작 & 타스오쿠나 글·그림, 『빙과 14권』: 13권과 마찬가지로 애니화되지 않은 분량이다. 빙과 특유의 잔잔한 학교생활 속 추리 이야기가 넘 좋다. 14권도 나왔던데 얼른 보고 싶다. 『빙과 코믹스』나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와 같이 완결되지 않은 시리즈물은 좀 미루고 미루어 하나씩 보는 편인데, 그래야 완결 날 때까지 버티기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방식으로 읽을 때 장점이 하나 더 있다. 기간을 두고 천천히 읽으니 이전 편 스토리가 기억 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면 다시 첫 편부터 읽으면서 ‘이런 일이 있었지’ 돌아보고, 새로운 편까지 쭉 읽어나가는 것이다! 이미 읽은 책도 한 번 더 즐기고 그 위에서 새로운 편을 읽는 것이라 나름 알찬 (?) 전략이라 생각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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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보르헤스의 환상 문학 단편집이다. 꼭 누군가가 나에게 직접 들려주는 것 같아서 편하게 읽었고, 소재도 매력적이다. 가장 좋았던 작품 몇개를 꼽자면 아무래도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바벨의 도서관」, 「바빌로니아의 복권」이 떠오른다. 틀뢴~은 가상의 세계를 현실에서 구축하려는 기록이 하나하나 밝혀지는 이야기가 정말 좋았고, 바벨의 도서관은 소재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바벨의 도서관 이미지가 머릿속에 딱 떠오르지 않아??! 물론 보르헤스의 문학은 풍부한 은유로 잘 알려져 있고 여러 해석이 있는 작품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갈 때 느껴지는 신비로운 분위기만으로도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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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마사카츠, 『처음 읽는 술의 세계사』: 술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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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경, 『샤워젤과 소다수』: 개꿀잼 시집임을 보장합니다. 진짜 꼭꼭 읽어보세요!!!! 사실 1부와 2부만 읽었긴 한데 3부도 얼른 읽고 싶음 (책이 지금 없다ㅠㅠ)… 1부 ‘여름 오후의 슬러시’는 여름 느낌 가득한 시가 가득하다. 여름 느낌이 뭐냐고? 시집 읽어보면 안다. 2부 ‘소다맛 설탕맛 돌고래맛 혼잣말’은 깔깔 웃으면서 읽었다. 이런 게 시…?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의 스토리가 웃기다. 「리얼 다큐멘터리」, 「스트릿 문학 파이터」, 「살아남아라! 개복치 - 몰라 몰라 내가 죽은 진짜 이유를」이 특히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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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셀라 포스토리노,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히틀러가 먹을 음식을 미리 시식하는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 화자인 로자의 묘사가 차분하면서도 씁쓸하여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읽었네요.
- 모리치오 비롤리, 『공화주의』: 공화주의가 뭔지 알고 싶어서 읽은 책.
- 공화주의에서는 시민의 자유와 존엄, 자치적이고 독립적인 공화국, 주권자 시민이 법에 따라 정치에 참여하도록 하는 제도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사적 지배와 군주·주인에 의한 예속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공화주의적 자유의 핵심이라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 이전에 나는 ‘애국’ 개념을 민족·문화·종교적 동질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았었다. 하지만 공화주의적 애국이 공화국의 정치제도와 규범, 공적 삶에 참여하는 생활방식에 대한 애착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애국’ 개념이 긍정적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하반기에 읽은 책이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상반기에 읽은 책들 되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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